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과학과 종교의 관계 (문단 편집) == 과학과 종교는 무관하다. == '''독립 모델/이론 (Independence model/theory)''' >신화는 과학과는 전연 무관한 인간의 심리적이거나 영적인 본성의 필요를 충족시킨다. 신화를 과학으로 바꾸거나, 과학을 신화로 바꾸는 것은 '''신화에 대한 모욕이며, 종교에 대한 모욕이며, 과학에 대한 모욕이다.''' 창조론자들은... ...창조와 [[노아|재창조]]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를 가졌으면서도 그것을 망쳐 버렸다. >---- > [[마이클 셔머]],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 243쪽 >종교와 과학은 서로 다르고 배타적인 인간 사고 영역이다. 이 둘을 동일선상에 놓을 경우 과학 이론과 종교 신앙 모두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 > [[National Academy of Sciences|미국국립과학원]], 1981년 정책선언문 中 몇 차례 논쟁을 겪은 많은 이들은 '전쟁' 또는 '갈등' 모델을 불신하게 되었으며 일단 이것은 역사적으로도 의심스러워 보였다. 그리고 소위 '갈등론'이 과학이나 종교에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높아졌다. 그리하여 두 분야를 완전히 상호 독립적인 것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과학과 종교는 저마다의 규칙과 언어를 지닌,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학문 분야 혹은 실재의 영역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과학은 종교적 신앙에 관해 할 말이 별로 없고, 종교 역시 과학 연구에 관해 할 말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과학과 종교는 싸울 이유도 없고 서로 영역이 겹치지 않는다고 본다. 이런 입장은 [[방법론적 자연주의]]와도 약간 관계가 있다.[* 완전히 같지는 않다. 방법론적 자연주의는 애초에 과학이 종교의 영역에 끼어들 이유가 없음은 보여주지만, 종교가 과학의 영역에 끼어들지 않는다고 보장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쉽게 설명을 하기 위해 비유를 들자면, 화가와 시인이 각자의 규칙을 가지고 각자의 방식으로 예술을 표현하듯이 과학자와 성직자도 각자의 영역에서 각자의 언어로 진리를 탐구한다는 이야기이다. 화가와 시인이 모두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듯이 과학자와 성직자도 진리를 추구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서로의 영역이 만나는 접점에서 대화를 해볼 수도 있고 때로는 서로에 대한 무지로 인해 다툼이 일어날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전혀 다른 분야라는 것이다. 과학자들 중에는 이 독립 모델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다.[* 마이클 셔머도 이 사실을 넌지시 언급했다. 참고로 셔머는 [[무신론]]자 내지는 [[불가지론]]자이기는 하지만 종교에 대해서도 꽤 호의적인 사람이다. 셔머는 실제로 << 현대 과학 종교 논쟁 >>이라는 책에서 반종교주의를 거세게 비판하기도 했다.] 이런 견해를 가진 몇 사람 예를 들자면 [[스티븐 제이 굴드]]와 마시모 필리우치[* 생물학과 철학을 전공한 과학철학자.]를 들 수 있다. 물론 이런 입장을 취한다고 해서 [[종교]]에 호의적이라는 보장은 없다. 단지 과학적 입장 혹은 종교적 입장에서 종교 또는 과학을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입장을 취하는 경우 종교에 대한 입장도 가지가지이다.[* 가령 굴드의 경우에는 종교에 호의적이다. 그리고 필리우치의 경우에는 중립적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종교적 문제에 무관심한 사람들도 대체로 이쪽의 스탠스를 취하는 편이다. 굴드는 겹치지 않은 각자만의 교도권이라는 의미의 [[NOMA]](Non-Overlapping Magisteria)를 제안했다. 과학이 설명하는 영역은 종교가 끼어들 자리가 없고, 종교가 설명하는 영역은 과학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이 모델의 바탕에는 과학과 종교가 서로 다른 방법론 및 해석 영역을 갖고 있음을 상호 존중하고 인정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 나는 이 교도권들 간에 상호 존중 및 우호의 협약, 즉 NOMA 해법이 있음을 진심으로 믿는다. NOMA는 그저 외교적인 태도가 아니라 윤리적이고 지성적인 토대 위에서 원칙에 입각한 입장이다. 또한 NOMA는 양쪽에 똑같이 적용된다. 더 이상 종교가 과학의 교도권에서 사실적 결론의 본질을 제대로 밝힐 수 없다면, 과학자 역시 세상의 경험적 본질에 관한 우월한 지식을 바탕으로 도덕적 진실에 관한 더 높은 혜안을 지녔다고 주장할 수 없다. 이와 같은 상호 겸손한 태도는 이토록 다양한 열망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현실적으로 중요한 결과를 가져온다. 많은 과학자들과 신학자들이 NOMA의 기본적인 견해, 즉 과학과 종교가 분리된 영역을 가진다는 점에서는 동의한다. 하지만 NOMA의 세부적인 내용에서,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비판 의견도 만만치 않다. 결국 종교는 과학이 아직 밝혀내지 못한 틈새에 기생할 뿐이며 그 틈새들은 과학의 발전으로 점점 메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제리 코인의 경우 굴드가 "과학 대 종교"의 구도에 너무 집중하여 다른 학문(윤리학이나 철학 등)을 소홀히 다루어서 사실상 "과학 대 과학이 아닌 것"의 구조가 되었다고 비판했다. 한편 필리우치는 '이것은 과학이 아니다'에서 NOMA를 까면서 굴드가 둘의 관계를 너무 순진하게 봤다고 평가했다. 필리우치는 종교는 형이상학의 한 분야이고 과학은 형이하학의 한 분야이기 때문에 둘이 충돌할 여지 자체가 없다고 말한다. 과학이 [[방법론적 자연주의]]와 뗄레야 뗄 수 없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할 때 굴드의 견해와 차이가 생기는 것은, 서로가 서로를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는 굴드의 NOMA에서는 종교가 창조과학을 주장해도 종교가 NOMA를 들먹이면 마땅히 대응하기가 어렵다. 반면에 피글라우치의 견해에서는 종교가 형이상학의 한 부분으로 묶여있기 때문에 종교가 창조과학 등을 주장할 여지가 없어진다.[* 쉽게 말해 굴드의 견해에는 종교의 영역이 명확히 정의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서로 건드리지 말자고 합의가 되었어도 여전히 충돌이 생겨날 여지가 있지만, 필리우치는 애초에 과학의 영역을 형이하학적인 영역으로 한정함으로서 충돌의 여지 자체를 없앴다는 것이다.] 물론 필리우치가 종교가 과학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한 건 아니고, 형이상학-형이하학은 단순한 영역의 차이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위에 언급한 갈등론자인 도킨스는 한술 더떠서 굴드가 좋게 말해서 순진한, 적나라하게 말하면 어리석은 행동을 했다고 주장한다. 굴드의 NOMA는 결국 종교에게 비판과 반박을 피할 피난처이자 방패막이를 제공했을 뿐이며, 종교의 과학에 대한 간섭은 여전히 지속될 것이라는게 도킨스의 주장이다. 미국의 신학자 랭던 길키는 이 굴드의 견해를 약간 다르게 표현한다. 그는 1959년의 저서 『천지의 창조주』에서 신학과 자연과학은 실재에 접근하는, 서로 독립적이고 다른 방식이라고 주장한다. 자연과학에서 '어떻게'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종교는 '왜'라고 묻는다. 전자가 2차적 원인(즉, 자연 영역 내의 상호작용)을 다루는 반면, 후자는 1차적 원인(즉, 자연의 궁극적 기원과 목적)을 다룬다고 주장했다. 독립 모델은 많은 과학자들과 신학자들에게서 환영받는다. 각자의 고유 영역에서, 다른 교도권(영역)으로 부터 자신의 교도권이 침해당하지 않으면서 원하는 바를 자유롭게 얻을 수 있고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종교가 없는 사람들이나 유신론 중에 [[이신론]](理神論)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여기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